안도 타다오를 보고 뮤지엄산을 갔습니다
예전에 학교 교양 강의 중 리빙 디자인과 문화라는 과목이 있었다. 예쁘신 교수님이 디자인 역사를 참 잘 정리해서 가르쳐 주셨었는데 그때 썼던 보고서를 찾았다. 나만 봐도 안아깝지만 그래도 재밌으니깐 올려본다.
진짜 이 과목 어떻게 에이쁠 받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지금와서 보면 너무 건방지게 보고서를 썼던것 같다ㅋㅋ
https://serieson.naver.com/movie/detail.nhn?productNo=4201513
안도 타다오
전문적인 건축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예술성과 도전정신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안도 타다오. 고교시절엔 복서로, 청년시절엔 건축 현장에서 치열한 나날을 보냈던 그는 우연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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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타다오 영화입니다. 포스트에 나오는 몇몇 사진들은 안도 타다오의 영화가 출처이며, 문제가 될 시 사진들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도 타다오가 지은 뮤지엄 산에 가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산을 다녀왔습니다. 대구 미술관이나 근처 전시회를 가도 될 일이었지만, 이번 과제를 핑계를 대서라도 꼭 가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안도 타다오라는 인물은 저의 진로에 적잖이 영향을 주었고, 지금도 삶의 방향에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보고서는 생각보다 쓰잘데기없는 제 개인적인 얘기도 들어있으며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안도 타다오 이야기에 대해서도 써 볼 예정입니다. 이번 보고서를 계기로, 무의식 중에 느낌으로만 알고 느꼈던 그와 그의 건축물들을 구체적으로 곱씹어보며 머릿속에 남겨놓길 기대하는 바입니다.
안도 타다오의 책을 읽다.
저는 원래 경영학과였지만 지금은 의류패션학과를 복수전공하고 있습니다. 옷의 패턴을 뜨고 고급 수트를 직접 손으로 짓는 테일러가 되보고자 공부를 시작했었는데, 정작 옷을 배우면서 4학년이 될 때 까지 옷을 만들 시간이 없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졌습니다. 공부에 대한 회의감, 학교에 내다버린 내 시간을 어찌하나 라는 후회감이 밀려오던 그때, 마침 나갔던 공모전도 예선에서 모두 떨어지며 뭔지 모를 좌절감 속에, 취업 걱정 미래걱정 온갖 걱정만 들던 차였습니다. 정말로 패션 쪽은 센스가 없는 걸까 하며 그렇게 우울한 방학을 보내던 중에 우연히 목공 클래스를 접하였고, 정신 차려보니 가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길로 빠져있었습니다(저는 오래 고민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무튼 여름방학동안 공방을 오가며 배웠는데, 그 때 공방장님이 추천해주신 책이 안도타다오였습니다, 너랑 잘 맞을 것 같으니 천천히 한번 읽어보라며 추천해주셨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인물이어서 다양하게 접해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중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지만 정말 많이 생략되어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도 타다오.
안도 타다오의 삶을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과감합니다. 안도의 원래 직업은 복싱 선수였지만, 체육관에 스파링을 하러 온 프로 챔피언의 기량을 보고 바로 포기해버렸다는 일화는 꽤 유명합니다. 그러곤 건축을 독학으로 배우고, 곧장 사무소를 열어버렸죠. 물론 일본의 건축 시스템이 그를 스타 건축가로 만든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의 과감함 덕분에 그는 현대 건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의 과감한 스케치가 역시 예술에 가깝습니다. 추상화같습니다.
건축으로서 그에게 영감을 준 것은 판테온의 돔 모형과 르 코르뷔지에였습니다.
안도 역시 모더니즘의 그들처럼 기계가 만든 집이라는 조롱을 받고 콘크리트 집을 의뢰해 짓고 살다가 겨울에 얼어 죽을 뻔 한 일본 집주인들의 원성을 받으며 감성을 무시한 듯한 건축을 선보였지만, 르 코르뷔지에나 안도 둘 다 누구보다 인본주의적인 건축가였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좋은 주거환경에서 살기를 바랬던 마음이었고, 안도는 사람의 주거공간에 외부의 환경과 빛, 바람, 물 모두가 공존하길 바라면서 누구보다 풍부한 경험을 실내에서 하길 원했습니다.
의 건축 표현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출 콘크리트입니다. 회색 반죽의 콘크리트를 주거 공간으로 끌어온 생각은 차마 일본인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던 것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색은 분명 빛과 어둠 모두에 적응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었고 그 회색은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한데 뒤섞기 위해, 있으면서도 없어야만 하는 경계선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때로는 작업반장의 멱살을 잡기도 하고 의뢰인과 공공기관 부처의 사람들을 몇 년에 걸쳐 설득하는 그의 고집 역시 건축의 의미를 더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의 생각이 참 멋지다고 느꼈습니다. 일반적인 평수에 일반적인 아파트 모형, 그 속에서 살았던 저에게, 삶이란 실내에서부터 풍부해지는 것이구나 라는걸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의 건축을 보러 원주로. 뮤지엄 산.
영화도 보고, 책도 보면서 그가 지은 건물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습니다. 똑같은 모듈, 똑같은 박스 공간에서 벗어나 그가 뮤지엄 산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저 또한 사람들에게 풍부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가구에 한 발짝 씩 가까워 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고속 버스를 타고 원주로 올라가 다시 시내 버스를 타고 뮤지엄 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멉니다. 그리고 정말 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산인가 했는데, Space Atr Nature의 약자였습니다. 평소 말장난만 하는 저와는 다르게 정말이지 기가 막힌 네이밍이 아닐 수 없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보고서 쓰다가 쓸 말이 없어서 아무말 시전했네요)
어느 미술관에 가든 공통적으로 하게되는 실수가 있는데, 건물의 내부에 들어서면 항상 길을 잃습니다
특히나 안도 타다오가 지은 건물은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일본 특유의 건축 양식 때문 아닐까 싶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시각적인 변화를 효율적으로 더 많이 줌으로써 개개인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일본인들의 정서는 한국인인 저로서는 뮤지엄 입구도 못찾게 만드는 바보로 만들 뿐이라 제 취향과는 살짝 달랐습니다. 예컨대 코너를 돌다가 뜬금없이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나온다던가, 코너를 꺾으니 난데없이 라운지체어가 나오는 등 예측 불가능한 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재밌었던 점이 있었기에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앞서 언급했던 건물의 특이한 구성인데, 관람객이 세로로 횡단하게끔 만들어진 뮤지엄은 외부와 내부가 교차하며 드러나는 구조입니다. 예컨대 긴 띠 형식의 창이 삼각주 모양으로 모여 뮤지엄 중간에 구멍을 형성하고 이곳을 휴식할 수 있는 자갈 정원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임스 터렐관과 명상관은 뮤지엄 건물을 벗어난 뒤 돌 무덤 정원을 통과하여 도달하는 구조라 뮤지엄은 어느 곳이 내부이고 외부인지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조금 더 확장하여 뮤지엄 산을 둘러싼 아름다운 가을 산도 미술관을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안도 타다오는 뮤지엄 산을 지을 당시 주위의 아름다운 경관을 건축물 내부로 끌어들이겠단 생각을 하고 지었다고 합니다. 과연 빛의 건축가라 불리는 그답게 빛과 바람, 물, 그리고 원주의 아름다운 관경 모두 건축물과 버무려 버렸습니다. 당시 뮤지엄을 건너면서 철학자가 건물을 짓는다면 이렇겠구나 하는 망상이 들기도 했습니다.
뮤지엄 산은 내외부가 뒤섞인 것도 매력이지만 건축물 구조가 물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경건한 느낌을 주는 연못은 잔잔하게 뮤지엄 산을 감싸며 흐르고 있어 걷는 내내 평온한 느낌을 들었으면 좋았겠지만 관람객이 너무 많아 여유를 즐기지 못해 아쉽기도 했습니다.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면 뜬금없이 백남준 선생님의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 코너를 꺾으면 또 난데없이 파이미오 의자나 라운지 체어가 놓여져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안도 타다오가 실제로 디자인한 건축인 뮤지엄 산에서 제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냐면, 뮤지엄 산은 날씨 좋은 날 가면 사람이 많아 제대로 구경하기 힘들고, 시내 버스도 얼마 다니지 않아 왠만하면 차를 빌려서 가든 자차로 가든 자가용으로 가는 게 감상에 좋을 것 같았습니다. 무지하게 피곤했습니다. 진심으로 힘들었습니다. 다음에는 꼭 렌트를 해야겠습니다.
제가 앞으로 하게 될 가구에는 어떻게 적용해볼 수 있을지 무척이나 고민을 했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안도는 안도의 방식대로, 전 저의 방식대로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겠다”입니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중요한 깨달음이기도합니다. 누구처럼 되고싶다, 누구만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좋지만 그와 똑같아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콘크리트는 분명 이유가 있어 존재하였고, 내부의 복잡함 하나 하나에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빛과 물과 바람, 풍경모두를 엮어 사람들의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자는 것이었죠. 그의 느낌을 제 것에 접목시키기보다 그가 만든 결과물들에 대해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사유하는 것이 저의 역량을 더 키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소재든 모양이든 방식이든 그와 같이 ‘이유’가 있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해봅니다.